CCTV (Ep. 04) 살해영상
회사로 복귀하자마자 가편집실로 들어간 김PD는 안에서 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가편집실 데크를 통해 훔쳐온 CCTV영상을 보기 위해 편집셋팅을 했다. 편집장비가 더 필요하자 옆 가편실에서 편집장비를 뜯어온 김PD는 데크의 라인을 연결시켰다. 그리고 조그셔틀로 검색을 시작했다.
1초에 30프레임이 찍히는 영사방식이 아니라, 1초에 5프레임씩 녹화되는 방식으로 레코딩된 테잎이라 화면의 선명도는 물론이고, 레코딩된 영상은 마치 분절된 그림처럼 뚝 뚝 끊기듯 보였다. 편집기에서는 거칠게 돌리는 조그셔틀로 괴기스런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드디어 자신들이 도착하기 바로 직전인 5시 40분이 되었다. CCTV 영상하단에는 시간이 리얼타임으로 찍혀있었던 것이다. 5시에 인터뷰를 하기로 했으나, 30분 지연되었을 때 통화를 했고, 그로부터 20분이 지나 도착했었다.
김PD는 자신이 도착한 시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5시 51분으로 시계의 초침이 넘어갈 때였다. 지금 모니터에 찍혀있는 시간은 5시 40분에서 채 몇 초 모자랄 때였다. 지금까지의 영상에는 사무실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철밥통들. 아직 6시가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퇴근들이라니. 하여간 나라밥 쳐먹는 년놈들 치고 퇴근시간 지키는 것들이 없다니깐.’
김PD는 퇴근시간을 지키기 위해 자신에게 그 지랄을 했던 여비서의 말로가 어땠는지 궁금했다. 사무실에는 여비서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무엇인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자신이 제대로 본 것이 맞는다면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여자처럼 보이는 형체였다. 마치 검은 안개라도 몸에 붙이고 다니는지 그 형태가 불분명한 형체. 모락모락 피워오르는 검은 안개를 붙인 채 여자처럼 보이는 형체는 천천히 사무실로 들어섰다.
김PD는 모니터의 셀렉트 버튼과 컬러게이지를 돌려보았지만 그 형체에서 검은 안개를 떼어내지는 못했다. 그건 디지털노이즈거나 잘못 촬영되었을 때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주변의 다른 물체들은 여지껏과 전혀 다름없이 확실히 구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비서가 그 형체를 본 것은 잠시 후였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 영상 속의 형체는 여비서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CCTV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순간 김PD는 자신을 쏘아보고 있는 날카로운 시선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확연히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모니터 속 그 형체의 눈이 붉게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와 거의 동시에 모니터가 먹통이 되었다.
방송이 모두 끝난 뒤에 시끄러운 치치칙 소리와 함께 화면이 하얀 줄무늬로 가득 차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바로 그 때와 같이 모니터 화면은 하얀 줄무늬로 가득 찼고, 곧이어 완벽한 어둠이 내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꺼만 영상이 비쳐졌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김PD는 모니터 세트와 편집기 세트의 전원과 연결케이블의 상태를 서둘러 점검했다. 그러나 아무 이상이 없었다. 가편집실에서는 순간 이상한 정적이 감돌았다.
가끔씩 모니터 속에서 칙칙거리는 노이즈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공포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김PD는 그 노이즈 속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모니터의 볼륨을 높였다. 점점 높일수록 사람이 이를 가는 소리처럼 들렸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눈 앞에서 본 김PD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을 때...
그 검은 화면 속에서 붉은 눈동자가 껌뻑 눈을 떴다. 그리고 죽는 자들이 내지르는 고통스런 비명소리가 함께 흘러나왔다. 그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 속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붉은 눈동자를 본 김PD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을 노려보는 붉은 눈동자를 피할 수 없어 스스로 눈을 가렸다.
이때 사장실에 켜져있던 12개의 창 중 하나에는 가편집실에 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상황이 녹화되고 있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영상이 누구도 모르게 녹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김PD의 몸이 편집기 모니터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김PD의 손짓, 발짓이 보였던 것도 잠시 결국 모니터 속으로 잡아당겨진 김PD는 이제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창 역시 검은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암흑으로 변했다.
드디어 혼령이 CCTV를 통해 생명을 얻은 것이다.
※이 이야기는 2009년 12월31일 밤부터 2010년 1월1일 아침까지 벌어진 공포의 밤을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