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Ep. 06) 악몽의 시작
5시간 전. 밤 8시.
“어이, 연실장!”
사무실문을 벌컥 열고 자신을 호명하는 박사장의 얼굴이 보이자 연실장은 얼굴부터 일그러졌다.
서로를 너무 잘 아는 그들인지라, 박사장의 얼굴이 무엇을 말하는지 연실장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뭔가 한창 신나있는 저 얼굴은 자신을 비아냥거릴 무엇을 찾아냈을 때 짓는 표정이었다.
작가들과의 프로그램 회의를 진행하며 한참 후배 작가들의 기를 죽여놓던 순간, 박사장의 호출이라니. 그것도 반말로. 연실장은 너무 싫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은 수군댔다. 서로를 증오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왜 10년 동안이나 함께 일을 하는지 도대체 그 이유를 모르겠노라고 수군댔다.
그 이유는 둘만이 아는 비밀일 것이다.
추정하건대 그들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서로를 믿거나, 의지하기 때문이 아니라 결코 믿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추측했다. 두 사람 서로가 매일 쳐다보며 증오를 키울지라도, 뒷통수를 얻어맞는 일은 막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 추측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서로의 비밀과 비리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관계라면, 결코 떨어져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박사장은 연실장과 함께 스튜디오가 있는 13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한 층 밑인 스튜디오에 내려갈 때도 언제나 엘리베이터를 타는 습관이 붙은 박사장이었지만, 기다림을 참을 수 없어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뒤따라오던 연실장이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앙칼진 목소리로 물어도 박사장은 뭐에 신이 났는지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며, 마치 은혜라도 베풀 듯 단서를 이야기 했다. 단 한 마디, 단서가 될 만한 말을 던져준 박사장은 그녀가 자신이 던진 말 한마디로 고민하는 것까지 즐길 생각이었던 것이다.
바로 그 미끼는 ‘서로 깊이 아는 사람’ 이었다. ‘서로’, ‘깊이’, ‘아는 사람’.
연실장은 직감적으로 그것이 누구를 이야기 하는 줄 알고 발걸음을 멈춰섰다. 그리고 흥분한 채로 스튜디오를 누비는 박사장의 뒷모습을 분노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연실장이 더 이상 따라오지 않는 것도 모른 채 박사장은 자신의 아성인 프로덕션을 순시하듯 돌았다.
스튜디오에서는 모바일서비스가 되고 있는 ‘에로피아’ 라는 섹스토크 프로그램의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섹시VJ가 언제나 에로틱한 의상을 한 채 사람들의 질문에 답변을 해주는 무척이나 간결한 섹스 리퀘스트 쇼였다.
그 진행자인 섹시VJ가 스튜디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박사장을 향해 아는 척을 했다.
“어머, 박사장님. 사무실에 계셨어요?”
“어이구, 오늘은 한결 분위기가 좋은데. 오늘 술이나 한잔 할까? 시간 비워둬!”
“네, 사장님.”
의미심장한 멘트와 미소를 날리며 박사장은 가편집실로 향했다. 문을 벌컥 잡아당겼다. 열리지 않았다. 안에서 잠근 듯 문이 열리지 않았다.
박사장은 사람들을 불렀다.
불려온 촬영감독이 가편집실의 열쇠를 찾아와 열었다.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있어야할 김PD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 편집데크 모니터에는 검은 화면만 떠있었다.
박사장은 편집데크의 조그셔틀을 리와인드로 돌렸다. 어서 보고 싶을 뿐이었다. 모니터 화면을 통해서 퇴근시간을 서두르는 직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드디어 형체를 알 수 없는 여자가 등장할 차례가 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모니터는 검은 화면으로 바뀌었다.
더구나 비명 같은 노이즈 소리에 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들 귀를 막아야만 했다. 화면 어디에도 위원장의 죽음은 물론이고, 형체를 알 수 없는 여자의 등장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단 한 사람.
김PD만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박사장은 자신의 장난감을 빼앗긴 아이 마냥 맥이 빠짐을 느꼈다.
그런 박사장 옆으로 연실장이 다가왔다. 연실장은 멍해진 박사장이 휴대폰을 꺼내 김PD에게 전화를 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무섭게 일그러진 박사장의 얼굴로 짐작컨대 김PD가 이 자리에 나타난다면 무사치 못하리라. 김PD의 휴대폰 수신음은 길게 이어졌다.
“이거 도대체 어디서 나는 소리지?”
최TD가 NG사인을 냈다.
어디서 나는 소린지 모르겠으나 스튜디오 녹화 중에 들리는 휴대폰 수신음. 스튜디오 스탭들은 모두 자신의 휴대폰을 확인해 보았지만,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 소리가 들리는 근원을 찾게 되았다. 그러나 계속해서 그 소리는 방음벽이 설치된 스튜디오 안에까지 끊기지 않고 들려왔다. 방음벽으로 설치된 스튜디오에서 그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모두들 휴대폰 소리가 어디서 들리는지 확인하고자 쫑끗 귀를 곤두 세웠다.
그때 조연출이 벌벌 떨면서 손으로 무엇인가를 가리켰다.
조연출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무엇인가를 본 사람들은 그 자리에 못이 박힌 듯 꼼짝할 수가 없었다. 떨리는 손가락이 가리킨 것은 바로 스튜디오 부조정실에 설치된 10대의 모니터였다.
바로 그 모니터 속에는 김PD의 데드마스크가 클로즈업되어 비춰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2009년 12월31일 밤부터 2010년 1월1일 아침까지 벌어진 공포의 밤을 다룹니다.